제1화. 쇼핑보다 재밌는 거 있어? [1000억의 호구, 설계자를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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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결제 되셨습니다. 영수증은…."
"버려요. 종이 쪼가리 무거워."
직원이 건네는 두 손을 무시하고 돌아섰다. 매장 매니저가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문까지 배웅했다.
"감사합니다, 강진혁 고객님! 또 방문해주십시오!"
백화점 VIP 라운지를 빠져나오며 나는 하품을 씨버 삼켰다. 손목에 감긴 파텍필립 노틸러스가 묵직했다. 오늘 산 시계다. 가격은 2억 8천. 이유는 단순했다. 오늘 입고 나온 셔츠 소매랑 색깔이 맞아서.
나는 강진혁. 대한민국 굴지의 유통 그룹 회장의 손자이자, 현금만 1000억을 쥐고 있는 스물 살 백수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다 가진 놈'이라며 부러워한다. 개소리다. 다 가져봐라. 인생이 얼마나 지루한지.
신상 스포츠카? 3일 타면 질린다.
명품? 창고에 쌓을 곳도 없다.
클럽? 여자? 술? 지겹다. 다 똑같다. 내 돈 냄새 맡고 달려드는 파리떼들.
심장이 뛰지 않는다. 뭘 사도, 뭘 먹어도, 누구를 만나도. 내 도파민 수용체는 이미 고장 난 지 오래다.
"진혁아! 여기야!"
압구정 로데오 뒷골목. 간판도 없는 허름한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친구 놈이 손을 흔들었다.
지하 특유의 쾌쾌한 냄새 대신, 은은한 시가 향과 값비싼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
"여기가 뭐 하는 덴데 오자고 난리야?"
"형만 믿어 봐. 너 요즘 재미없다며. 여기가 요즘 강남에서 제일 핫한 '홀덤 펍'이야."
홀덤? 카드놀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유치하게 무슨 카드놀이인가 싶어서 나가려던 찰나, 테이블 위에 쌓인 칩들이 눈에 들어왔다. 장난감 같은 플라스틱 칩이 아니라, 묵직해 보이는 세라믹 칩.
"야, 이거 현금 아니잖아. 재미없게."
"바보냐? 저 칩 하나가 10만 원이야. 저기 쌓인 거 봐. 지금 판돈만 2천이다."
2천만 원. 내 시계 줄 값도 안 되는 돈이다. 흥미가 뚝 떨어졌다.
그런데,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묘했다.
땀을 뻘뻘 흘리는 넥타이 부대, 입술을 잘근잘근 씨버대는 성형 미인, 그리고 눈에 핏발이 선 채 카드를 쪼는 내 친구 놈까지.
고작 저 칩 몇 개 때문에 사람이 저렇게 절박해진다고?
"자자, 선수 입장하십니다. 진혁 도련님 앉으시죠."
친구가 억지로 등을 떠미는 바람에 테이블 한구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딜러가 매끄러운 손놀림으로 카드를 뿌렸다. 내 앞에 떨어진 카드 두 장.
끝을 살짝 들어 확인했다.
[ A ◆ ], [ A ♣ ]
까만색 에이스, 빨간색 에이스.
일명 '아메리칸 에어라인'. 홀덤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패였다.
물론, 그때의 난 그게 얼마나 좋은 패인지도 몰랐다. 그저 그림이 예쁘다고 생각했을 뿐.
"체크."
"10만."
"콜."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칩을 던졌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간 보는 것도 아니고, 10만 원이 뭐냐 10만 원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내 앞에 놓인 칩을 몽땅 밀어버렸다.
"재미없게 다들 뭐 합니까? 올인."
순간, 왁자지껄하던 테이블에 정적이 흘렀다.
딜러의 손이 멈췄고, 맞은편에서 콧노래를 부르던 썬글라스 낀 남자가 선글라스를 살짝 내리며 나를 쳐다봤다.
"학생? 지금 블라인드가 얼만 줄 알고 올인을 박아? 여기 200만 원 팟이야."
"알아요. 그러니까 박지. 시끄러우니까 죽을 거면 죽고, 칠 거면 치쇼."
나는 턱을 괴고 그들을 내려다봤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 패가 좋아서? 아니다. 내 패는 아직 까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던진 '돈'의 무게에 짓눌린 것이다.
"하… 이거 미치겠네. 뻥카 같은데…."
"죽어, 죽어. 저 새끼 눈빛이 맛이 갔어."
하나둘씩 카드를 던지며 포기(Fold)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썬글라스남도 욕설을 내뱉으며 카드를 엎었다.
"아, 안 받아! 더러워서 못 먹겠네!"
딜러가 테이블 중앙에 쌓인 칩을 긁어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대략 300만 원.
내가 백화점에서 쓴 돈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금액.
그런데.
'…어?'
심장이 뛴다.
백화점에서 2억짜리 시계를 찰 때도 꿈쩍 않던 내 심장이, 고작 300만 원어치 플라스틱 칩을 긁어모으는데 미친 듯이 펌프질을 해대고 있었다.
상대방이 꼬리를 내리고 도망칠 때 느꼈던 그 짜릿한 정복감.
돈으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돈으로 사람의 '기세'를 꺾어버리는 쾌감.
"진혁아! 너 미쳤어? 첫판부터 올인을 박으면 어떡해! 근데 너 패 뭐였냐?"
친구가 호들갑을 떨며 내 카드를 뒤집었다. 에이스 두 장이 천장을 향해 빛났다.
"와! 에어라인! 미친놈, 패 좋았네! 난 또 쌩구라인 줄 알았지!"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처음 온 놈이 겁도 없네", "운빨 죽이네"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칩을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세라믹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뇌수까지 찌릿하게 전달됐다.
이거다.
내가 찾던 쇼핑이 여기 있었다.
나는 지갑에서 수표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환전해."
"네? 얼마나… 해드릴까요?"
"일단 3억."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3억… 다 하시게요?"
"왜? 모자라? 모자라면 더 가져오고."
나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천장 조명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게 빛났다.
오늘 밤, 집에 일찍 가긴 글렀다.
이 빌어먹게 지루한 세상에서, 드디어 나를 흥분시키는 장난감을 찾았으니까.
재밌게 읽어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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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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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 작성일
달리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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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캐스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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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캐스터 - 작성일
제 이야기를 이렇게 쓰시면 어떡해요?
달리자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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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자 - 작성일
설국열차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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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 작성일
하우스인사이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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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인사이드 - 작성일
도박 또한 쇼핑이라?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