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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1분에 10억, 악마의 속도 (Speed) [1000억의 호구, 설계자를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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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 룸, 오픈해."

박 실장의 손짓에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방 안은 수술실처럼 서늘했다.

홀덤 테이블의 시끌벅적함은 사라지고, 오직 '카드 슈(Shoe)' 돌아가는 기계음과 칩 부딪치는 소리만 들리는 냉혹한 공간.

"여기선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사장님이 배팅하면, 바로 깝니다."

나는 남은 칩 8억 8천만 원을 파란색 테이블 위에 쏟아부었다.

홀덤에서 안경 잽이한테 당한 굴욕? 3시간 동안 머리 굴리며 딴 돈?

여기서 딱 두 판. 딱 두 판만 먹으면 그깟 돈 몇 배로 복구된다.

"앉아. 딜러, 슈 섞어."

딜러가 감정 없는 얼굴로 카드를 섞었다.

모니터에 '게임 시작' 불이 들어왔다.

[ PLAYER ] vs [ BANKER ]

단 50%의 확률. 홀짝 게임.

족보도, 심리전도 필요 없다. 오직 동물적인 감각, '촉' 하나면 된다.

"첫 판이니까 가볍게, 뱅커에 1억."

나는 칩 한 뭉치를 툭 던졌다.

대기업 과장의 1년 연봉이 1초 만에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오픈."

플레이어: [ 3 ] [ 4 ] = 합 7.

뱅커(나): [ K ] [ 8 ] = 합 8.

"뱅커 8, 내추럴 승리."

단 10초.

10초 만에 1억이 복구됐다.

짜릿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전율. 홀덤에서 한 시간 동안 패 쪼고 눈치 보던 게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 이거지! 이렇게 빨라야 돈 먹는 맛이 나지!"

도파민이 뇌를 강타했다. 방금 전까지 느꼈던 분노와 패배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다시금 내가 '선택받은 자'라는 착각이 차올랐다.

"계속 가. 이번에도 뱅커. 2억."

승부의 신이 내 편인 걸까?

뱅커, 뱅커, 뱅커.

모니터에 빨간색 동그라미(뱅커)가 줄줄이 찍히기 시작했다. 일명 **'줄(Streak)'**을 탔다.

"뱅커 승리."

"뱅커 승리."

순식간에 8억이었던 칩이 15억으로 불어났다.

안경 잽이에게 잃었던 자존심? 이미 다 찾고도 남았다.

나는 의자에 거만하게 기대며 박 실장을 보며 웃었다.

"박 실장 봤어? 이게 실력이야. 홀덤은 무슨, 애들 장난이고."

"대단하십니다. 촉이 살아있으시네요. 오늘 강남 돈 다 쓸어 가시겠습니다."

박 실장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그가 뒷짐 진 손으로 딜러에게 수신호를 보내는 것을.

'약 쳐. 슬슬 작업 들어가.'

"자, 승부 한번 보시죠 사장님. 지금 '뱅커 줄'이 6개째 내려왔습니다."

6연승. 이제 꺾일 때가 됐나? 아니면 계속 갈까?

도박꾼들의 이성이 마비되는 시점.

나는 거만하게 칩을 밀었다.

"줄은 타라고 있는 거야. 끊길 때까지 간다. 이번에도 뱅커. 5억."

딜러가 카드를 깔았다.

플레이어: [ 1 ] [ 2 ] = 합 3.

별볼일 없는 패다.

내 카드(뱅커)를 받았다.

바카라의 묘미, **'쪼기(Squeeze)'**를 시작했다.

첫 번째 카드. 그림(J, Q, K). 꽝이다. 0점.

괜찮다. 두 번째 카드만 잘 나오면 된다. 플레이어가 3점이니까, 나는 4점 이상만 나오면 이긴다.

'제발… 4 이상….'

카드를 확 뒤집었다.

[ 4 ♠ ]

"뱅커 4. 플레이어 3. 뱅커 승리!"

"와아아악!!!"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또 맞췄다. 7연승.

내 앞의 칩은 이제 20억이 넘어갔다.

세상이 내 발아래 있는 것 같았다. 돈 버는 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 땀 흘려 일하는 놈들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사장님, 오늘 진짜 되는 날이네요. 이 기세면 오늘 100억도 따시겠습니다."

박 실장의 달콤한 속삭임.

그 말이 독이 든 사과인 줄도 모르고, 나는 덥석 베어 물었다.

"그래. 짤짤이 그만하자. 한 방에 끝내."

나는 눈앞에 있는 칩을 몽땅 끌어모았다.

대략 20억 원.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을 손으로 밀어버렸다.

"설마… 다 가시게요?"

"왜? 쫄려? 안 받아줘?"

"아닙니다. 사장님이 원하시면 리밋(Limit) 풀어드려야죠."

딜러가 새 슈(Shoe)를 꺼내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동작이었지만, 그 슈는 미리 순서가 세팅된 **'탄(조작된 카드)'**이었다.

"올인. 뱅커에 다 박아."

20억 원의 칩이 '뱅커' 칸에 산처럼 쌓였다.

내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이것만 먹으면 40억. 오늘 밤의 영웅은 나다.

딜러가 카드를 배분했다.

"플레이어 오픈."

[ 8 ♥ ] [ K ♣ ]

합이 8. '내추럴 8'.

바카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점수가 나왔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

내가 이기려면 오직 하나. **'내추럴 9'**가 나와야 한다.

확률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카드를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카드. 오픈.

[ 9 ♠ ]

좋다. 9다.

이제 두 번째 카드가 그림(J, Q, K)이나 10이 나오면 된다. 그러면 합이 9가 되어 이긴다.

하지만 1, 2, 3 같은 숫자가 나오면 9 더하기 숫자가 되어 뒷자리가 0, 1, 2로 떨어진다. 즉, 패배다.

나는 두 번째 카드를 잡았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천천히 쪼았다.

'다리가 있다!'

카드의 옆면(Legs)에 무늬가 보였다. 그림이거나 10, 9, 8, 7, 6 중 하나다.

조금 더 밀어 올렸다.

점이 두 개가 보였다. '투 세컨(Two Sides)'.

즉 4, 5, 6, 7, 8, 9, 10 중 하나다.

여기서 그림(J, Q, K)이나 10이 나오면 나는 '내추럴 9'로 승리한다. 40억의 주인공이 된다.

'제발… 그림… 그림이어야 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카드를 확 뒤집었다.

테이블을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 5 ◆ ]

9 더하기 5는 14. 바카라 룰에 따라 10을 빼면…

합이 4.

"플레이어 8, 뱅커 4. 플레이어 승리."

딜러의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리고 딜러의 긴 갈퀴(레이크)가 내 앞에 쌓여 있던 20억 원의 칩을 순식간에 쓸어갔다.

촤르르륵-.

칩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내 뼈가 부러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어……?"

텅 빈 테이블.

1분 전까지만 해도 20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파란색 천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아… 아냐. 잠깐만. 다시 봐. 내가 9 잡았잖아?"

"사장님, 합이 4입니다. 내추럴 8한테 지셨습니다."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꿈이 아니다.

내 돈 20억이, 아니 처음에 가져왔던 원금까지 전부. 단 1분 만에 증발했다.

"으아아아악!!!!"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명을 질렀다.

분노? 아니, 공포였다.

돈을 잃은 공포가 아니라, 승리의 쾌감이 사라진 금단 현상의 공포였다.

"돈… 돈 더 가져와! 야! 칩 더 내놔!"

나는 박 실장을 붙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박 실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오늘 정해두신 '이체 한도'가 끝났습니다. 현금도 다 쓰셨고요."

"뭐? 그깟 한도가 문제야? 내가 강진혁이야! 내일 풀어주면 되잖아! 칩 먼저 빌려달라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박 실장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는 이 순간을 위해 홀덤에서 잃게 만들고, 바카라에서 띄워줬다가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가 품 안에서 꼬깃꼬깃한 서류 한 장을 꺼냈다.

"그럼… 이걸로 하시죠. 사장님 신용 믿고 '개인적'으로 빌려드리는 겁니다. 이자는 좀 셉니다만."

차용증. 그리고 그 옆에는 볼펜이 놓여 있었다.

평소라면 절대 쳐다도 안 봤을 종이 쪼가리.

하지만 지금 내 눈에는 그게 유일한 구원 동아줄로 보였다.

"얼마나 줄 건데?"

"일단… 30억, 어떻습니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볼펜을 잡았다.

내 영혼을 파는 계약서인 줄도 모르고.


※ 다음 화 예고: 30억을 빌려 다시 앉은 테이블. 하지만 바카라 슈는 이미 조작되어 있다. 빌린 돈마저 0원이 되는 순간, 박 실장의 태도가 180도 돌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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