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돈으로 악마를 고용하다 [1000억의 호구, 설계자를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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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한남동 펜트하우스.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었지만, 기분은 지옥이었다.
"으윽…."
몸을 일으키자 온몸이 쑤셨다. 거울을 봤다.
입술은 터져 있고, 광대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대한민국 재계 서열 10위권 그룹의 직계 손자가, 강남 뒷골목에서 두들겨 맞고 들어왔다?
뉴스에 나올 토픽감이다.
"하…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쪽팔림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어젯밤의 그 장면들이었다.
안경 잽이의 포카드.
바카라 딜러의 묘한 손놀림.
그리고 박 실장의 비웃음.
"재벌 3세? 여기선 현금 없으면 개털이야."
나는 바닥에 떨어진 깨진 파텍필립 시계를 집어 들었다.
유리 파편에 비친 내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어제의 나는 도파민에 미친 호구였지만, 오늘의 나는 독기 품은 맹수였다.
"그래, 내가 개털이라고? 너희들이 누굴 건드렸는지 똑똑히 보여주지."
나는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실장, 지금 즉시 현금 50억 준비해. 그리고 내 방으로 '그 사람' 좀 부르고."
"그 사람이라니요?"
"뒷조사 전문 흥신소장. 제일 입 무겁고 능력 좋은 놈으로."
한 시간 뒤.
말끔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 서재로 들어왔다. 흥신소장 '최 씨'였다.
그는 내 얼굴의 상처를 보고 흠칫 놀랐지만, 프로답게 내색하지 않았다.
"부르셨습니까, 이사님."
"최 소장. 강남에 있는 사설 도박장들. 거기서 기술 쓰는 타짜들 명단 좀 뽑아봐."
최 소장이 난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사님, 강남 바닥에 타짜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쪽은 워낙 음지라…."
나는 서랍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던졌다.
[ 100,000,000 KRW ]
1억 원.
"이건 착수금. 내가 원하는 건 잔챙이가 아니야.
현재 현역에서 뛰는 놈들 말고, 은퇴했거나 숨어 지내는 '진짜 고수'.
강남 타짜들이 벌벌 떨 만한, 사기 도박의 원리를 뼛속까지 아는 기술자. 그런 놈 찾아."
최 소장의 눈이 커졌다. 그는 수표를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 가는 인물이 딱 한 명 있습니다."
"누군데?"
"별명은 '교수'. 본명은 아무도 모릅니다.
10년 전, 마카오와 필리핀 카지노 보안 팀장으로 일하면서 타짜들 손목 수십 개를 썰어버렸던 전설이죠.
지금은 한국 들어와서 은둔하고 있다는데… 성격이 좀 괴팍해서 돈으로도 안 움직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돈으로 안 움직여? 세상에 그런 건 없어. 액수가 부족했을 뿐이지.
당장 위치 파악해."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기원(바둑 두는 곳).
간판은 반쯤 떨어져 나갔고, 지하에서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이런 곳에 전설의 고수가 있다고?
"여기 맞아요?"
"확실합니다. 매일 여기서 내기 바둑이나 두면서 소일거리 한다더군요."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뿌연 담배 연기 속에서 노인네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그 구석탱이에, 낡은 러닝셔츠 바람으로 컵라면을 먹으며 만화책을 보고 있는 중년 남자가 보였다.
까치집 지은 머리, 초점 없는 눈동자, 며칠 안 깎은 수염.
누가 봐도 동네 백수였다.
"저 사람이 '교수'라고?"
"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내가 앞에 서 있는데도 고개도 들지 않고 컵라면 국물만 후루룩 마셨다.
"당신이 교수요?"
그제야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나른한 눈빛.
하지만 그 눈동자 안쪽 깊은 곳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내 뼈와 살을 엑스레이처럼 훑어보는 느낌.
"누구신데 남 밥 먹는 거 구경하쇼? 바둑 두러 왔으면 줄 서."
"바둑 말고. 도박 배우러 왔소."
주변 노인들이 힐끔거렸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국물을 들이켰다.
"도박? 번지수 잘못 찾았어. 난 그런 거 몰라."
"10년 전 마카오 보안 팀장. 타짜 사냥꾼.
강남 하우스 놈들 머리 꼭대기에 있는 사람. 맞잖아?"
남자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그가 천천히 일어나며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키가 꽤 컸다. 그리고 낡은 옷 밖으로 드러난 팔뚝에는 칼에 베인 듯한 긴 흉터가 있었다.
"젊은 친구. 돈 많아 보이는데, 괜히 엄한 데 힘쓰지 말고 집에 가서 발 닦고 자.
도박은 배우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이기는 거야."
그는 귀찮다는 듯 다시 앉으려 했다.
나는 준비해 온 007 가방을 테이블 위에 쾅 내려놓았다.
철컥-.
가방을 열었다.
노란색 5만 원권 띠지 묶음이 가득 차 있었다. 현금 5억.
기원 안의 모든 시선이 가방에 꽂혔다. 컵라면을 먹던 노인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5억이야. 내 스승이 되어주는 값으로."
남자는 돈다발을 쓱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돈 자랑하러 왔나? 5억? 큰돈이지. 근데 난 돈 필요 없어. 꺼져."
역시 쉽지 않다. 최 소장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 남자가 아니면 박 실장 그놈들을 이길 수 없다.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돈이 싫으면, 이건 어때.
당신, 10년 전에 강남 '오 회장'이라는 놈한테 작업 당해서 손가락 하나 날아갈 뻔했다며?"
남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최 소장이 조사해 온 그의 유일한 약점, 과거의 원한.
"지금 나를 공사 친 놈들이 바로 그 오 회장 라인이야. 박 실장이라고."
남자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나른했던 백수의 눈은 사라지고,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태수? 그 뱀 같은 새끼가 아직도 강남 바닥에 있어?"
"그래. 내가 그놈들 박살 낼 거야. 돈은 내가 댈 테니까, 당신은 기술만 대."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컵라면 용기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가방 속의 돈다발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재밌네. 돈 냄새 풀풀 나는 호구 도련님인 줄 알았는데, 독기는 좀 있구만."
그가 내 얼굴의 멍을 가리켰다.
"근데 그거 알아?
복수하려면 기술이 아니라, 연기부터 배워야 돼.
상대를 속이려면, 너 자신부터 완벽한 호구가 되어야 하거든."
"상관없어. 뭐든 해."
"좋아. 계약하지."
그가 007 가방을 닫았다. 탁, 소리가 기원 안에 울려 퍼졌다.
"대신 조건이 있어.
지금부터 내 말에 토 달면 계약 파기야.
내가 하라는 대로 먹고, 자고, 싸고, 배팅해. 알겠어?"
"콜."
나는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무기를 손에 넣었다.
1000억의 자본과 전설의 기술자.
이제 사냥꾼과 사냥감의 위치가 바뀔 시간이었다.
※ 다음 화 예고: 8화. "기초부터 다시." 펜트하우스에 차려진 비밀 훈련장. 교수가 보여주는 타짜들의 충격적인 속임수 기술들(렌즈, 탄, 밑장빼기). 그리고 밝혀지는 박 실장 일당의 설계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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