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사자는 파리에게 물려도 화가 난다 (Bad Beat) [1000억의 호구, 설계자를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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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칩 정리 좀 하고 가실게요."
새벽 2시. 멤버십 룸의 공기는 탁했다.
내 앞에는 10억 원어치 칩이 거대한 성벽처럼 쌓여 있었다.
반면, 나머지 8명의 칩은 초라했다.
많아 봐야 1억, 적은 놈은 5천만 원 수준. 내 칩 더미의 10분의 1도 안 되는 '푼돈'을 가지고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강 사장님, 오늘 진짜 날 잡으셨네요."
"저희 같은 서민들은 숨도 못 쉬겠습니다, 허허."
패배자들의 비굴한 웃음소리. 나는 다리를 꼬고 샴페인을 홀짝였다.
이 맛이다.
돈으로 짓밟고, 칩의 높이로 계급을 나누는 이 쾌감.
"한 판 더 돌려. 지루하니까 빨리빨리 좀 하자고."
딜러가 카드를 돌렸다. 내 핸드를 확인하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K ♠ ] [ K ◆ ]
'킹 포켓(King Pocket)'.
홀덤에서 에이스 다음으로 강력한 프리미엄 핸드다.
프리플랍에서 가볍게 판을 키웠다. 다들 죽어나갔지만, 구석에 처박혀 있던 '뿔테 안경'이 끈질기게 따라왔다.
그의 앞에는 고작 1억 2천 정도의 칩이 남아있었다.
"플랍(Flop) 보겠습니다."
딜러가 바닥 카드 3장을 깔았다.
[ K ♣ ] [ 8 ♥ ] [ 3 ♠ ]
빙고.
바닥에 킹이 깔렸다. 내 손의 킹 두 장과 합쳐서 트리플(Triple).
일명 '탑 셋(Top Set)'. 현재 이보다 강력한 패는 없다.
나는 짐짓 약한 척 미끼를 던졌다.
"벳. 500만."
그러자 뿔테 안경이 안경을 고쳐 쓰며 칩을 만지작거렸다.
"500 받고… 2,000만 더 레이즈 하겠습니다."
"호오?"
감히 내 앞에서 레이즈를 쳐?
나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오늘 뼈도 못 추리게 해주지.
나는 내 앞에 있는 거대한 칩 산을 두 팔로 밀어버렸다.
"레이즈? 귀엽게 노네. 올인. 10억."
우르르 쏟아지는 10억 원의 칩.
테이블 중앙을 다 덮고도 넘쳐서 바닥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사람들이 경악하며 일어났다.
"미친… 플랍부터 10억을 밀어 넣었어?"
"야, 저걸 누가 받아?"
나는 뿔테 안경을 내려다봤다.
"어떡할래? 그 푼돈으로 받을 수 있겠어? 쫄리면 죽던가."
뿔테 안경은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 쥐었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남은 칩을 전부 밀어 넣었다.
"…못 죽겠습니다. 셋(Set)이라서. 콜."
"딜러! 사이드 팟 진행해. 그리고 카드 까!"
나는 자신만만하게 내 카드를 뒤집어 테이블에 내리꽂았다.
"킹 셋(King Set)이다! 탑 셋인데 네가 어쩔 거야?"
[ K ♠ ] [ K ◆ ] - 킹 트리플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 탑 셋! 끝났네, 끝났어!"
"안경 님은 뭐예요? 8 셋? 3 셋?"
뿔테 안경이 울상인 얼굴로 카드를 오픈했다.
[ 8 ◆ ] [ 8 ♠ ] - 8 트리플
"죄송합니다… 저도 8 미들 셋이라서…."
상황 종료.
나는 킹 3장, 놈은 8 3장.
똑같은 트리플이지만 킹이 훨씬 높다.
이제 남은 카드 두 장(턴, 리버)에서 놈이 이길 확률은 딱 하나.
카드 덱에 남은 마지막 '8' 한 장이 떨어지는 경우뿐이다.
확률은 고작 4% 미만. 사실상 내가 이겼다.
"야, 넌 죽었다 깨어나도 안 돼. 8 하나 남았는데 그게 나오겠냐?"
나는 이미 승리감에 취해 웨이터에게 팁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경 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기도하고 있었다.
"자, 턴(Turn) 카드 주세요."
딜러의 손끝에서 네 번째 카드가 천천히 뒤집혔다.
모두의 시선이 그 카드 한 장에 쏠렸다.
팔락-.
[ 8 ♣ ]
"……어?"
순간, 멤버십 룸의 시간이 멈췄다.
내 눈을 의심했다. 클로버 8.
마지막 남은 그 8이, 거짓말처럼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안경 놈의 패: 8, 8, 8, 8.
포카드(Four of a Kind).
"와아아아악!!!! 포카드다!!!!"
"미쳤다! 턴에 포카드가 떴어!!"
주변 구경꾼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뿔테 안경이 벌떡 일어나며 만세를 불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와 이게 뜨네!"
나는 멍하니 테이블을 바라봤다.
탑 셋이… 포카드한테 밟혔다?
96%의 확률로 이기고 있었는데, 단 한 장의 카드로 지옥으로 떨어졌다?
"사… 사장님. 사이드 팟 정산하겠습니다."
딜러가 내 칩 10억 중에서 안경 놈이 가진 1억 2천만 원만큼을 떼어냈다.
그리고 남은 8억 8천만 원은 다시 내 앞으로 돌려줬다.
안경 놈은 기적적으로 2억 4천만 원을 챙겨갔다.
돈? 1억 잃은 거?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내 멘탈이었다.
"이게… 말이 돼?"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 이겨놓은 판이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그런데 저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말도 안 되는 운빨로 내 뒤통수를 쳤다.
마치 신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강진혁, 네 돈으로도 안 되는 게 있어.'
"야."
내 목소리가 뱀처럼 차갑게 나갔다. 환호하던 안경 놈이 멈칫했다.
"너 탄(속임수) 썼지."
"네? 무슨 말씀을…."
"어떻게 거기서 8이 떨어져! 딜러랑 짰지! 내 돈 먹으려고 수작 부린 거잖아!!"
나는 테이블을 엎어버릴 듯이 발로 걷어찼다.
와장창! 얼음통이 쏟아지고 유리잔이 박살 났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눈앞이 시뻘개졌다. 소위 말하는 '뚜껑이 열린(Tilt)' 상태.
"사장님! 진정하세요! 이건 그냥 사고(Bad Beat)입니다!"
박 실장이 달려와 나를 뜯어말렸다.
"비켜! 저 새끼 안 잡아?! 야, 안경! 너 가지 마! 그 돈 놓고 다시 앉아!!"
하지만 안경 놈은 이미 칩을 챙겨 슬금슬금 뒷문으로 빠지고 있었다.
"아이고, 저는 무서워서…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망가는 놈의 뒷모습을 보는데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 더러운 기분. 찝찝하고, 굴욕적이고, 패배감에 젖은 이 기분을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 지금 당장 무언가로 보상받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씩씩거리며 박 실장의 멱살을 잡았다.
"야, 홀덤 때려치워."
"네?"
"기다리는 거 질색이야. 카드 쪼는 것도 짜증 나고, 운빨도 짜증 나."
내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빠른 거 없냐?
내가 돈으로 찍어 누르면, 토 달지 않고 바로바로 결과 나오는 거 없냐고!!"
박 실장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가 기다리던 타이밍. 호구가 이성을 잃고 제 발로 사형대에 오르는 순간.
"있죠. 사장님 스타일에 딱 맞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가 손을 들어 가장 안쪽의, 붉은 조명이 켜진 방을 가리켰다.
"바카라(Baccarat). 거긴 1분이면 됩니다. 복구하는 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앞에 남은 8억 원의 칩을 몽땅 쓸어 담았다.
지옥행 급행열차의 문이 활짝 열렸다.
※ 다음 화 예고: "1분이면 돼." 홀덤 3시간보다 바카라 1분이 더 짜릿하다. 뱅커와 플레이어, 50% 확률에 1000억의 운명을 걸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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